웹진(아이사랑)

[웹진 아이사랑 제61호] 전문가에게 물어요

이것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학대 불안, 퇴사를 결심한 워킹맘

38개월 여아, 다슬이(가명) 엄마입니다. 미술 학원을 운영하신 친정어머니께서 아이 눈높이에 맞춘 오감 놀이를 잘해주시고 아이도 부모님을 잘 따르는 편이라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버틸만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퇴사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어요. 최근 불거진 보육시설 내 끔찍한 아동학대 뉴스 때문입니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안감이 극도에 달한 시부모님의 성화 때문입니다. 남편의 회사는 아빠육아휴직 제도를 권장하고 있음에도 남편의 진급과 커리어 때문에 안 되고 제가 퇴사라니요.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아동학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내 자식의 안전을 엄마만큼 걱정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제가 왜 시부모님과 남편을 설득해야 할까요? 어린이집 하원 이후 시간에 다슬이를 돌봐주는 것도 친정 부모님이다 보니 시댁 부모님들의 염려와 걱정이 간섭으로만 느껴집니다. 심지어 시어머니께서는 어린이집에서 각서를 받아오라고까지 하십니다. 학대의심 시 피해보상 각서라니 민망하기 짝이 없어요.

아이를 사랑으로 돌봐주시는 우리 선생님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제력과 돌봄 어디쯤, 누구를 위한 퇴사일까?

다슬이 어머니 마음이 복잡하실 것 같습니다. 퇴사를 고려하게 되어서요.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다슬이를 사랑으로 돌봐주신다는 믿음이 있는데도 말이죠. 아마도 어린이집 선생님이 행복해 보였던가 봅니다.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을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보육시설의 불미스런 사건으로 모든 곳이 다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다슬이 어머니께 퇴사를 요구하는 남편과 시부모님이 원망스러울 것 같아요. 이 상황에서 상담을 통해 더 참고할 만한 정보를 얻으시려고 하는 것은 아주 지혜로우신 것 같아요.

또한 다슬이 어머니께서 퇴사를 내켜하지 않는 심정도 이해가 되요. 여자들의 인권은 경제력과 관련이 많잖아요? 여자가 경제력이 없으면 가부장제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거든요. 살림하는 여성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성취감을 맛볼 수도 없고, 육아의 경제적 가치가 노동력으로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다슬이 어머니께서 고민하시는 퇴사 여부와 어린이집에서 각서 받는 문제는 다슬이 어머니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시대적으로 문화적으로 이 정도의 권리는 여성에게 허락하고 있으니까요. 시부모님의 뜻대로 퇴사한다고 해서 다슬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하루 종일 데리고 있을 수도 없을 거고요. 그리고 남편과 시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퇴사한다면 오히려 다슬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마음을 헤아린다고 해서 꼭 의견을 따라야할까?

다슬이 어머니 마음이 복잡하실 것 같습니다. 퇴사를 고려하게 되어서요.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다슬이를 사랑으로 돌봐주신다는 믿음이 있는데도 말이죠. 아마도 어린이집 다슬이 어머니께서 직장을 계속 다니기로 선택해 시부모님께서 서운해하실까봐 염려된다면, 시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릴 수는 있어요. 다슬이의 안전을 염려하시는 시부모님의 의도는 고맙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시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드린다고 해서 시부모님의 의견을 따른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겠지요. 구체적으로 시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드리는 방법을 말씀드린다면, 이렇게 이야기해보세요. 시부모님의 불안과 걱정스러운 ‘마음’을 알아채는 겁니다. 알아채기 위해서는 내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는 경청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경청을 하게 되면 시부모님보다 어머니께 유익이 될 수도 있어요. 시부모님이 바라는 것 단순히 며느리의 퇴사가 아니라 손녀의 안전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게 되는 거죠.

어려운 관계, ‘경청법’ 대화로 풀기
어머님 아버님, 걱정이 많으시죠?
요즘 뉴스를 보고 다슬이도 그런 일을 겪게 될까 봐 불안하실 거예요.

이 말을 들은 시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네요. 그러나 이와 같은 경청법으로 고부 갈등이 감소했다는 실제 사례들은 아주 많아요. 다만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다음과 같아요.

첫째, 모든 선택에는 결과와 책임이 따른다는 거예요.

직장에 계속 다니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드나 경제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겠지요. 경제력이 있으면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요. 적어도 남편이나 시댁으로부터 억울한 경험을 참아야 하는 상황은 줄어들 거예요. 퇴사하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나 나의 경제력을 과시할 수가 없어요.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에 의존해야 하고, 시댁과 관여할 상황이 더 늘어날 수도 있어요. 다슬이 어머님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에 따라오는 모든 결과를 본인이 기꺼이 감수하고 책임지면 되겠지요.

둘째, 경제력과 돌봄 중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는가가 중요해요.

하루 종일 얼굴 보기도 힘든 아빠는 생활비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자녀와 친밀해질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잠깐 자녀와 함께 있는 시간에 훈육하면 자녀로부터 거부당하고,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으로 소외되어 따돌림을 당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아버지가 번 돈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보살펴 주는 어머니만큼 사랑이 느껴지지는 않겠지요? 어머니가 직장을 다니고 외할머니가 육아를 한다면, 어머니는 위에서 말한 아빠 역할, 그리고 외할머니가 엄마 역할을 맡는 셈이네요. 물론 부모의 헌신이 자녀에게 인정받기 위한 목적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사랑’이라고 느껴지는 역할을 자녀는 더 원한다는 뜻일 거예요.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의 가르침을 더 잘 따른다는 얘기지요.

셋째, ‘성공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겠지요.

어떤 사람은 성공을 돈, 명예를 갖는 것,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지위와 권력을 갖는 것, 즉 힘을 갖는 것이라고 여기죠. 또 어떤 사람은 성공을 내 자녀를 행복한 사람으로 기르는 것,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받는 것, 자녀가 힘들 때 언제라도 위로받기 위해 찾아올 수 있는 부모가 되어주는 것, 부모의 훈육이 거부당하지 않고 자녀에게 영향력을 갖는 것이라고 여기고요.
그런데 슬프게도 힘을 가진 사람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힘이 있는 사람은 나의 힘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가 없고,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없어져요. 그 결과 대체로 힘이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해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게 되죠.

다슬이 어머니께서 직장에 계속 다니기로 선택하신다면, 그 경제력이 힘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애쓰고, 만약 퇴사하기로 선택하신다면 돌봄의 가치를 실행하는 존재론적 자존감을 유지하도록 애쓰면 좋겠지요. 어떤 선택을 하시든, 다슬이 어머니께서 그 선택으로 더 행복해야 하니까요.

본고는 집필자의 개인의견이며,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힘

글 · 박광석(서울상담교육연구소 소장)

국내 대학 및 한국산업카운슬러아카데미 등에서 상담 교수로 재직하며 1:1 맞춤상담 및 소그룹과 집합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역서 ‘불행한 십대를 도우려면’ (원저:Unhappy Teenagers by Dr. William Glasser)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