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아이사랑)

[웹진 아이사랑 제64호] 부부탐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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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육아맘의 하루 일과 엿보기

아이가 잠들고 몇 분이 흘렀을까, 엄마는 까치발로 방을 나옵니다. 거실 불을 켜자 눈이 시리게 번잡스러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주방 조리대 위에는 미처 소독하지 못한 우유병 여러 개, 개수대에는 켜켜이 쌓인 그릇들, 캐릭터가 그려진 놀이 매트 위에는 흩어져있는 알록달록한 장난감과 양 날개를 펼친 채 뒤집힌 책들이 보입니다. 할 일은 순서대로 기다리고 있지만 어쩐지 내키지 않습니다. 현란한 거실의 불을 딱 끈 채, 내가 있는 곳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춘다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상상해보세요. 이때부터 자유시간이잖아요!

 

엄마의 출출 세포가 화나기 전에 냉장고 문을 엽니다. 무알콜 맥주의 냉기가 손으로 전해오고 캔을 딸 때 ‘딱!’ 소리에 체증이 내려갑니다. 매운 걸 못 먹는 아이 때문에 참았던 떡볶이를 연신 먹다 보면 혀끝에서 스트레스가 증발합니다. 꿀 같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현실입니다. 미뤄놓은 숙제로 가득한 아침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피곤한 몸으로 눈을 뜨면 말갛게 앳된 아이의 얼굴을 보입니다.

 

“엄마, 오늘만 어린이집 안 가면 안 돼?” 애처로운 눈빛으로 사정하듯 말하는 아이를 달래서 버스에 태웁니다. 몇 시간 후 아이가 하원하고 나니 표정이 좋지 않고 미열이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병원에 다녀오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어린이집 안 간다고 한 거구나.’ 싶어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어제 늦게까지 본 드라마는 현실을 잊을 정도로 재밌었지만, 아무리 커피로 수혈해도 피로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퇴근한 남편이 저녁 먹자마자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을 때 부탁합니다.

“오늘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인데, 자기가 해줄 수 있어?”

“응, 이것만 보고 할게.”

남편은 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답합니다.

지금 밤 9시 넘었어.
이제 애 재워야 하는데 바로 해주면 안 돼?”

“이것만 보고 한다는데 왜 그렇게 재촉해?
나는 퇴근해서 쉬지도 못하냐?”

“그러면 나는? 애 아파서 병원 다녀오고 집안 일하느라
잠깐 앉아있지를 못했는데 자기는 퇴근하고 폰만 보고 있잖아!”

엄마이자 아내는 왜 화가 났을까요?

유아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를 돌보느라 여러 욕구를 오랫동안 참습니다. 아이 이유식 먹이느라 때늦은 식사를 하고, 아이 기저귀 처리하느라 화장실에 제때 가지 못합니다. 그런 자신에게 보상을 주기 위해 밤에는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음주, 야식, 동영상 시청 등의 방법이 잠깐은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된다면 오히려 감정조절에 방해가 됩니다.

 

우리는 몸 상태가 괜찮으면 좋게 넘어갈 일도 피곤하면 짜증이 납니다. 감정 기복이 심해 당황스럽다면, 우선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는지 살펴보세요. 현실적으로 여러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기는 어렵지만 ‘정도’를 조정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수면의 질을 높입니다.

 

밤 11시 이전에 잠들고 7시 이전에 일어나는 게 이상적입니다. 아이들은 숙면할수록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됩니다. 세로토닌이 적당하게 만들어지기 위해 낮에는 활동량과
햇볕 쬐는 시간을 늘립니다. 세로토닌이 적으면 우울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면
환경은 빛, 소음이 차단되도록 하고 온도, 습도를 적정 수준으로 맞춥니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과 수면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적어도 취침 한두 시간 전까지 식사, 음주,
동영상 시청은 마무리합니다. 참 어렵게 느껴지죠? 그럼에도 실천할 수 있는 것 하나만
골라 꾸준히 한다면 부족한 잠으로 인한 격한 감정은 줄어들 수 있어요.

둘째,

일정한 시간에 식사하고 식사의 질을 높입니다.

장은 세로토닌의 95퍼센트를 포함,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을 만듭니다. 많은 연구 결과
공통점은 장내 좋은 균이 많을수록 정신도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남긴 음식을
먹거나 식사를 대충 때우기도 하는데 부모의 정신건강이 아이에게 주는 막대한 영향을
생각하면 부모의 영양부터 챙기는 게 좋습니다.

셋째,

가족의 생활 리듬을 규칙적으로 습관화합니다.

 

어쩌다 한 번 정도는 경조사나 잡다한 일로 인해 늦게 자거나 끼니를 간식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수가 반복되면 아이에게도 안정감을 주기 어렵습니다. 자녀의
감정조절을 위해서라도 생활 방식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게 중요합니다.

넷째,

정서적으로 지지적인 관계를 만듭니다.

 

자녀가 친구를 사귀는 것만큼 부모의 의지처가 생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부모 자신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과 만남, 전화나 카톡 중 가능한 걸 합니다. 친밀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을 고르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취미, 산책, 운동, 반려동물과의 시간을
갖는 것이 감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직면하는 남편 vs 회피하는 아내

앞에서는 감정조절을 위한 일상의 실천 팁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부부가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눠보려 합니다. 앞서 말한 남편의 원가족 배경을 살펴볼게요.
이 부부의 고정된 갈등방식은 한 명은 직면해서 해결하려 하고 다른 한 명은 회피하려 합니다. 갈등을 해결하려는 방식과 시기가 달라 싸움이 커집니다. 이럴 때는 평소 합의되어 정하는 게 좋습니다.

부부싸움 중 아내의 외출을 강압적으로 막는 남편

 

한 남성은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부부싸움 후에 꼭 집 밖으로 나가려 해서 공포에 떨며 어머니께 나가지 말라고
매달린 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는 경우, 결혼생활에서 부부싸움 후 아내가 나가려 할 때
강압적으로 외출을 막을 수 있습니다. ‘불안’이라는 감정 때문입니다.

 

서로 몇 시간 동안 떨어져 있는 게 가능한지, 어디에서 어떻게 진정하고 다시 만날 건지 얘기가 되어 있다면,
실제 갈등이 생겼을 때 안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일단 자리를 피하는 건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야.”
“차분하게 얘기하고 싶어 30분 안에 집에 들어올게. 근처 공원 한 바퀴 돌고 오려고 해. 이따 다시 이야기하자.”
“우리가 흥분 상태니까 잠시 각자 진정하고 나서 만나자.” 등의 예문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자기조절 경험 만들기

 

감정을 조절하는 데는 자기조절과 타인조절로 나뉠 수 있는데 스스로 조절한 경험이 적을수록 감정을 자각하고
표현하는 걸 힘들어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 진정되길 바랍니다. 그 이유는 감정자각과
표현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장기에 내 감정을 타인에게 공감 받고 조절된 경험이 적어서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진정하는 방법을 배워서 연습하는 게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곡을 들으면 안정돼.’,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면서 만들면 편안하더라.’ 등입니다. 감각적으로 생생한 몰입이나 안정된 경험을 했다면
그 경험을 상상으로 떠올리거나 가능한 반복적으로 실천합니다.

부부 갈등이 있을 때, 심한 경우 도대체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했는지 도무지 결혼 전의 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최악의 상태에서 좋았던 때를 떠올리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잘 맞는 부분, 둘이 있을 때 가장 행복했던 장소와 시간, 소통되었던 경험을 생생하게 복기하는 게 관계에 도움이 됩니다. 추억을 떠올릴만한 사진, 편지를 봐도 좋습니다. 이때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그 장소와 상황에 있었던 것처럼 온몸이 몰입되도록 상상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여기에는 호흡 알아차림, 산책, 명상, 요가가 있습니다. 감정이 자극되는 상황에서 잠시라도 몸을 자각하면 멈출 수 있어요. 가장 쉬운 건 들숨, 날숨을 자각하는 거예요. 평소 이 습관이 익숙해지면 몸 상태의 변화를 시시각각 느끼며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본고는 집필자의 개인의견이며,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힘

글·김세정(허그맘허그인 아산점 수석상담사)
카운슬러 코리아(counselorkorea.com) 상담사, 저서로는 <감정에 휘둘리는 당신을 위한 심리수업>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