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아이사랑)

[웹진 아이사랑 제64호] 육아 즐거워요

육아 즐거워요 - 2021년 위드(with)육아, 잘 버텼다!
육아 즐거워요 - 2021년 위드(with)육아, 잘 버텼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자랄 수 없어요.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장애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심리적응 과정

Step 01

충격 / 부인

Step 02

분노 / 원망

Step 03

타 협

Step 04

좌절 / 낙담

Step 05

수 용
[출처] 장애아 부모지원 가이드북 개발 연구(한국장애인개발원)

아이의 장애소식을 듣는 순간, 내가 세상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고 당장 닥친 현실과 캄캄한 미래에 둘러싸여 아이의 사랑스러움마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워킹맘이기 때문에 소홀했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 친구를 만날 기회를 주지 못했어’ 같은 자책이 채찍질하다 아직 아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병원의 진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으니 엄마의 양육태도나 놓친 부분을 수정하면 아이는 곧 정상적인 발달영역으로 진입할 거라는 위안으로 많은 치료를 수소문해 다닌다. 그러다 아이가 ‘정상’의 모습을 찾지 못했을 때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비관하며 무기력감을 느끼고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그런 과정에서 남편이나 가족들에 대한 원망이 생기기도 하고 아이가 미워지기도 한다.

인간은 현상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고통 받는다.
- 에픽테스토 -

부모들이 이 단계를 지나 빠르고 수월하게 ‘수용’의 단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제대로 직면하는 것부터 필요하다. 미워진 건 아이가 아니라 감당 할 수 없는 현실이고, 내가 우울해 한다고 아이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이젠 중요하지 않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먼저 아이가 가진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 모습을 아이가 원해서 가진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가장 힘든 사람은 아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부족해 보이는 모습보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처럼 자신이 직면한 감정의 실체를 인식하는 순간, 헤쳐 나갈 방안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니 다음과 같은 감정을 직면해보시길 바란다.

01
양육자로서의
죄책감과 직면하기
아이에 대한 모든 일을 결정하고 보살펴왔기 때문에 자신이 놓친 무언가가 아이의 장애를 만들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양육태도와 관계가 없다. 아이의 증상이나 퇴행의 모습도 유전적으로 결정된 부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양육자로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을 찾는데 집중을 할 수 있게 된다.
02
미래에 대한
불안·두려움과 직면하기
다음 감정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막연함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당장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가진 장애가 어떤 것인지 어떤 치료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인지 한 단계 한 단계 준비하고 실행하며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지지한다면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불안함은 줄어들 것이다. 물론 이 과정들은 끝없이 반복되고 매순간이 도전이다. 하지만 아이와 가족의 미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다.
목표는 ‘완치’가 아니라 아이의 ‘자립’

수용의 단계에 들어서면 아이의 치료 목표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봐야한다.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이라고 한다. 누구도 시각장애인에게 잘 보려고 노력하라거나 청각장애인에게 들으려고 노력하라고 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시각과 청각이 그분들에게 제한된 능력이고, 점자읽기나 수화와 같이 다른 방법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훈련한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같은 정신질환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많이 다르다. 그들이 끊임없이 반복적인 행동을 하거나 사람들을 직접 쳐다보지 않고, 다니는 길만 다니는 것은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뇌 신경계의 제한된 능력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은 그런 독특한 행동들을 장애라는 이유보다는 ‘이상한 사람’이나 심한 오해가 있을 때는 ‘범죄자’ 취급을 하기도 한다. 또, ‘문제 행동‘이라고 정의하여 수정해야할 부분으로 여긴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완치’를 목표로 발달치료에 목을 매고 조금이라도 사회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환경을 만든다. 물론 아이가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조기에 개입할수록 예후가 좋아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일찍 아이에게 적합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완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훈련을 통해서 제한된 능력과 어려움을 가지고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아이의 치료와 예후를 생각할 때 부모로써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한다.
만약 아이가 정상인처럼 보이는 것이 목표가 된다면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부정하고 아이를 채찍질 할 수도 있다. 아이가 가진 그릇을 가득 채워주려 노력해야지 아이의 그릇 크기를 무리하게 바꾸다 깨져버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에게 바라야 하는 것은 정상인처럼 보이기 위한 노력도 완치도 아닌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여 자립해 살아가는 것이다.

‘자폐’라서가 아니라 그냥 이 아이라서

‘자폐(스펙트럼 장애) ‘라는 단어는 아이의 이해할 수 없는 많은 행동들을 설명하기 쉬운 하나의 정의다. DSM-5(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판)라고 정신의학적으로 분류되는 ASD(Autism Spectrum Disorder)에서 ‘Spectrum(스펙트럼)’이란,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 여러 가지 색의 빛으로 나뉘는 것 즉 빛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빛의 합성체라는 의미다. 그 만큼 증상이나 모습, 예후가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사람이 남자와 여자라는 단순한 분류를 넘어 머리카락이 긴 사람, 키가 작은 사람 등 외형적인 모습부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 수학연산에 뛰어난 사람 같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시각적 능력이 뛰어난 아이, 청각이 극단적으로 예민한 아이, 전정감각이 둔한 아이 등 아이마다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보이는 행동도 저마다의 이유가 다 다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단어가 아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인건 맞지만 그 단어가 아이의 모든 걸 대변 할 수는 없다. 양육자는 아이의 특성에서부터 이유를 찾아야 한다.

특정 음식을 안 먹을 때는 촉각이 예민해서 그 음식의 질감이나 맛이 심한 자극으로 올 수도 있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뛰어다닌다면 한꺼번에 쏟아지는 청각자극 때문에 스스로 조절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재료를 잘게 자른다던지 다른 형태로 요리를 하고,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생길 때까지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장애 진단명이 아닌 아이가 가진 다양한 모습과 이유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나는 너를 키우고, 너는 나를 키우고

특별한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먼저 단편적인 정보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에게 숫자를 가르칠 때 일이다. 흥미유도를 위해서 숫자에 동물 그림이 그려진 귀여운 숫자모양 퍼즐을 준비해 ABA 치료실에서 배운 것처럼 두 개의 보기를 보여주며 그중 하나가 1이고 나머지가 2인 것을 고르게 하는 방법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리 반복해도 내가 외치는 숫자를 골라내지 못했다. 아이가 숫자를 인지하지 못할 만큼 지능이 낮은 것인가에 대해 절망했다. 그러다 자석칠판에 붙이는 단순한 숫자 모양을 보여주며 고르게 했더니 곧바로 올바른 답을 골라냈다. 보통 시각적인 자료가 주어졌을 때 전체적인 모습을 보고 세부적인 부분을 보기 시작하지만, 이 아이는 세부적인 것부터 보인다고 한다. 우리 아들은 엄마가 아무리 ‘1’이라고 외쳐도 숫자 1 안에 그려진 생쥐만 보였던 것이다. 언어표현이 서툰 아이는 ‘강아지’를 보고 ‘1’을 찾으라고 하는 지시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제는 당장 아이가 대답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모를 거라고 유추하기 보다는 아이의 특성을 바탕으로 방법적인 부분이나 주변 환경의 원인을 고민해 본다. 직장에서나 지인을 만날 때에도 누군가를 한 가지 모습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특성이나 상황을 고려해보게 되었다.

두 번째,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수많은 것들이 사소해졌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선택을 한 적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고, 나를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신경을 쓰다 정작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은 사소해지고, 주어진 시간은 소중하다. 묵직하게 자리 잡은 나의 가치관이 주변의 바람이나 소리로부터 흔들리지 않게끔 해준다.

세 번째, 고난과 시련은 끊임없이 찾아오지만 하나씩 이겨 나가면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이다. 전정감각의 문제 때문에 자리에 앉는 것조차 어려웠던 아이가 책상에 앉아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소리를 내뱉는 법을 몰라 ‘물’이라는 단어도 말을 못하던 아이가 식사 후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일상의 대부분이 도전인 아이가 하나씩 해내는 것을 보면 어른인 나도 쉽게 지치지 않는 힘을 얻는다.

엄마도 숨 쉴 구멍,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은 생활 속 많은 부분에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단순히 대신 수행해주는 사람보다는 옷 입기, 이 닦기, 세수하기, 젓가락질 같은 일상생활부터 한글읽기, 연산하기 같은 학습까지 당연히 보고 배우는 것들을 단계별로 쪼개어 한 단계씩 알려주어야 한다. 선천적으로 모방의 능력이(미러신경의 문제) 떨어지고,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이 어렵기 때문에 백워드 체이닝(Backward chaining)* 같은 방법적인 부분을 많이 고민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은 체계화된 치료 방법이 없고 부모 스스로 책을 보고 공부하거나, 발품 팔아 발달치료센터나 전문가를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그래서 자칫하다가는 엄마의 삶이 100% 아이를 위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자폐스펙트럼의 치료와 아이의 성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기 때문에 부모나 가족 구성원들이 지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 백워드체이닝 (Backward chaining) : 첫 순서의 내용은 연습을 하게 하면서 본격적인 학습은 뒷 순서부터 익히는 것.

아이에게 모든 삶을 쏟다 보면 아이에게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이입하거나 때로는 자신을 잃어버린 듯 공허함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일상이 아이에게 맞춰져있다고 해도 적어도 하루 30분은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른다면 커피한잔 손에 들고 소파에 앉아 있어도 된다. 하루하루 반복되다 보면 잊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나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길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균형을 잡고 있어야 가족들이 부정적인 감정이나 외부요인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 30분은 가족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 아이들의 성장은 선형이 아니라 계단형이다. 한 단계를 뛰어 오르기 위해서 발달상의 변화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간을 기다려 주어야 한다. 이때 마치 정체된 것만 같은 시간을 이겨내는 힘이 필요하다. 선천적인 감각문제나 강박적인 문제로 예상치 못했던 돌발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지나고 보면 ‘그때 그랬지‘ 하고 마음 편히 회상하겠지만 당장 상황이 닥쳤을 때는 마음이 무너지고 힘든 순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틈틈이 마음근육을 키워야 한다. 나의 경우 수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거나 남편과 현재 아이상태를 얘기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면서 막연한 시간들을 가시적인 계획으로 바꾸려고 한다. 지인의 경우 매주 금요일 저녁시간은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몇 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눈앞의 장애물을 뛰어넘어 그 다음 코스로 진입하기 위한 힘을 길러주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기 바란다.

내가 아직 미혼이라면?
우리 아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가끔씩 상상을 한다. 내가 아직 미혼이라면, 우리 아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항상 이 상상의 끝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없다!’ 고 생각한다. 늘 앞을 향해 눈에 보이는 것만 좇던 나는 아픈 아이를 키우며 세상을 돌아보게 되었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시련을 겪는다. 그 형태와 크기가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시련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게 인간이다. 우리 아들은 엄마에게 시련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사랑하는 아들 둘 그리고 남편과 함께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본고는 집필자의 개인의견이며,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힘
글·전진명(에세이스트)
특별한 아이를 키우며 특별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글로 씁니다.
본캐는 느린 아이를 키우는 아들맘이자 엔지니어 워킹맘, 부캐는 에세이스트. 하고 싶은 일만큼 해야 할일이 많은
비자발적 멀티태스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