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아이사랑)

[웹진 아이사랑 제62호] 전문가에게 물어요

아빠냐 라이벌이냐
제 아들 승모(6세)는 숨바꼭질 놀이에 공포가 있습니다. 아빠가 승모와 실감나게 놀아준다고 방에 불을 끄고 혼자 둔 이후부터입니다. 제가 장롱 안에서 아이를 발견했을 당시 온몸이 땀과 눈물로 범벅이었습니다. 남편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며 사과했지만 그날 이후로 아들과 남편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승모가 원하는 대로 몸으로 잘 놀아주다가도 아이를 던진다던지 팔과 다리를 세게 붙든다던지 제가 보기에도 위협적일만큼 강도를 조절하지 못하곤 합니다. 또, 카드놀이나 역할놀이 하는 걸 보면 아들과 논다기보다 라이벌과 경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섯 살 아들을 이겼을 때의 그 뿌듯한 표정은 정말이지 한심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빠와의 놀이는 항상 아이가 울음을 터뜨려야 끝이 납니다. 아이 눈높이에 맞게 좀 놀아 주라고 했죠.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왜 아이하고 노는 것까지 간섭과 지적을 하냐?’는 말이었고 끝내 부부싸움으로 이어집니다.
우는 아이가 아빠를 치는 이미지
Q. 남편의 진심을 알고 싶어요!

얼마 전, 놀이터에서 잘 놀던 아이를 아빠가 또 울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네를 세게 밀어 공중으로 높이 올라간 아이가 자지러지게 놀랐던 겁니다. 다른 아이들과 부모가 지켜보는 앞에서 승모가 아빠를 밀치고 화를 냈죠. 저는 남편이 승모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길 바랐어요. 아빠가 미안하다고 따뜻하게 안아주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 온 남편은 오히려 아이에게 역정을 냈습니다. 아빠를 대하는 태도가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둥, 다시는 놀아주지 않겠다는 중 누가 여섯 살인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일가친척들에게 아들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승모가 자신을 미워한대요. 아들이 아니라 라이벌 친구처럼 대하는 남편의 진심은 무엇일까요?

아빠와 아들, 관계 잘 맺고 있나요?
승모 어머니께서는 남편이 한심하겠어요. 이런 남편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우신 거죠. 그래서 남편의 진심을 알고 싶다는 거로군요. 그리고 승모 어머니께서 진짜 원하는 것은 남편이 좋은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거고요.
많은 연구에 의하면, 자녀가 부모와 관계가 좋을 때 성취도가 높다고 해요. 특히 아빠와 관계가 좋을 때 성취도가 더 높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아빠들은 일에 강박적으로 매진하는 분들이 많아요. 자녀에게 필요한 물질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아빠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그에 반해 승모 아빠는 아들과 놀아주니 그 점에서는 좋은 아빠예요. 다만 아빠와의 놀이 경험으로 아빠와 관계가 좋아지면 더 좋겠지만요. 승모 아빠처럼 행동하는 이유를 몇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1 좌절을 겪고 견디는 훈련

첫째, 승모가 아들이기 때문일 수 있어요. 아들이 성인이 되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강하게 길러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일부러 좌절을 겪고 견디는 훈련을 시키려는 목적일 수 있어요. 남편도 승모가 딸이었다면 아마 다르게 대했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사내아이라면 이 정도는 무서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극복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었을 것 같네요.

하트 이미지
2 사랑과 보살핌의 결핍

둘째, 남편이 한때는 아들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남편도 같은 기대를 받으며 자랐을 거예요. 남자라면 강하고, 경쟁해서 이기고 성취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암시를 받았겠지요? 그러나 남자도 사람이니까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싶겠지요. 하지만 남자는 그런 욕망을 억압하라고 요구되죠.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아들이라도 이겼을 때의 힘욕구 충족은 사랑과 보살핌의 결핍감을 잠시 잊을 수 있거든요. 아내에게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기면 어떤 식으로든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싶어 할 수도 있고요.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은데, 제 참가자 중의 한 분도 집단 수업 중에 승모 어머니와 같은 호소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내가 남편을 예뻐하고 남편 의견을 존중해주면 어떻겠느냐고 했지요. 아들과 싸우는 남편을 예뻐하고 존중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그분은 그렇게 하셨어요. 그랬더니 아빠가 아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더래요. 게다가 아들의 ADHD 경향이 줄어들어 유치원 선생님 말씀이 동화책 읽어줄 때 집중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논다고 하셨다는 거예요.

3 공감 능력의 부재

셋째, 아빠의 공감 능력 부족 때문일 수도 있어요. 남자들은 대체로 자기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미처 예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신도 거칠게 다루어졌고, 그 덕분에 오늘날 강인함을 갖게 되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받은 부당한 대접을 정당화하면, 자신이 상대에게 하는 부당한 행동도 정당화하니까요. 과거에 자신이 상처받았음을 인정하고 아파해야 타인이 받을 상처를 예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Lisak이라는 학자는 ‘자신을 위한 공감’을 주장했지요.

4 돌봄의 모델

넷째, 돌봄 경험이 없거나 돌봄 모델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인형 놀이를 하고 동생을 돌보는 것은 여자아이에요. 남자아이는 전쟁놀이와 칼싸움을 하죠. 그리고 아버지가 자녀를 돌보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제 집단의 한 아버지는 아내에게 지적받은 경험을 얘기했어요. 아내와 큰아들이 외출한 후 작은아들이 딸기를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작은아들이 딸기를 다 먹어버렸다는 거예요. 외출에서 돌아온 큰아들이 딸기를 달라고 하자 다 먹어서 없다고 하니 아내는 외출한 가족을 위해 남겨 놓지 않았다고 뭐라고 했다는 거죠. 그래서 ‘남겨 놓으라고 말했어야지!’라고 했더니, 아내가 ‘그걸 말로 해야 알아? 어떻게 그런 생각을 못 할 수가 있어?’라고 화냈고, 남편은 ‘말해주지 않으면 그걸 어떻게 알아?’라며 같이 화냈다는 거죠. 이 말을 들은 다른 아버지들도 말하기를, 아내에게 이와 같은 질책을 자주 받는다고 하네요.
한 TV 프로에 시인 BTS라는 호칭을 듣는다는 김준 시인이 아버지와 함께 나오셨더군요. 연세가 일흔이 넘은 아버지는 평생 쓰레기 차를 운전하셨고, 이제는 정년퇴직하셔서 현재 중학교 2학년 과정에 재학 중이래요. 그런데 김준 시인은 자신의 감수성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며 아버지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에 대해 저는 잠시 생각해 보았지요.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길렀다고 하는데, 할아버지의 돌봄이 모델이 되어 아버지는 아들을 심리적으로 잘 돌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당신의 노후에 아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나요?

승모 아빠가 아들과 라이벌로 보이는 이유가 위에 말한 이유 어떤 것에 해당할 수 있을 거예요. 남편도 아들이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랄 테니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싶네요. 아들과의 관계가 노후에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느냐고요. 지금의 관계가 노후까지 연장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노후에 좋게 지내고 싶으면 지금부터 좋아야겠지요. 또한 아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인생은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아빠의 역할은 아들에게 좌절 경험을 추가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지지와 격려를 통해 아들이 좌절을 극복하는 힘을 주는 것인지를요. 농사 중에 자식 농사가 최고라는 말도 있잖아요? 아빠와의 행복한 추억이 아들에게 역경에 대한 자양분이 되어 좋은 결실을 거두었으면 좋겠어요.

본고는 집필자의 개인의견이며,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힘

글 · 박광석(서울상담교육연구소 소장)

국내 대학 및 한국산업카운슬러아카데미 등에서 상담 교수로 재직하며 1:1 맞춤상담 및 소그룹과 집합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역서 ‘불행한 십대를 도우려면’ (원저:Unhappy Teenagers by Dr. William Glasser)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