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아이사랑)

[웹진 아이사랑 제62호] 육아 즐거워요

삼남매와 우당탕탕 홈스쿨!
삼남매와 우당탕탕 홈스쿨!
“아니 셋을 어떻게 키워요?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너무 힘들겠다. 대단하다 진짜”
이런 류의 말을 많이 듣는다. 사실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든 날도 많으니까. 그런데 숨겨진 비밀이 있다.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그러게요. 하하’ 하고 웃고 말 때가 많지만 비결이 있다. 전쟁통 같은 일상에 피는 꽃을 보면 힘이 솟아난다. 힘이 솟아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 꽃 보려고 전쟁터에 나간다. 꽃 중의 꽃은 밥 먹는 모습, 우는 모습, 혼나는 모습, 짜증내는 모습, 웃는 모습, 노는 모습, 걷는 모습, 뛰는 모습, 자는 모습 등등등.

평화롭던 기지에 갑자기 굉음이 들리고 엄청난 진동까지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도 들린다. 서둘러 방탄모를 챙겨 쓰고 총을 들고 텐트 밖으로 나가 보니 어디선가 도발이 일어난 모양이다. 오늘은 또 어디서 총알이 날아들고 포탄이 떨어질지 떨리는 마음으로 잔뜩 긴장한다. 다행히 무사히 하루가 지나갔다. 전투복은 땀으로 축축해졌고 기운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입맛도 없고.

우리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다. 아내는 일곱 살 큰 딸, 다섯 살 둘째 아들, 두 살 막내 딸을 데리고 하루를 보낸다. 여기서 ‘하루’는 통상적으로 쓰는 ‘하루’의 의미가 아니다. 눈을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그리고 또 그때부터 다음 날 눈을 뜰 때까지 24시간 내내, 1분 1초도 떨어지지 않고 온전한 ‘하루’를 같이 보낸다. 보육기관에 아이를 맡기는 엄마들이나 나의 아내처럼 집에서 기르는 엄마나 사실 비슷하다. 애들 챙기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장 보고, 공부 봐 주고, 간식 주고. 다만 이 모든 일상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게 다르다. 말 그대로 ‘24시간’ 내내 ‘같이’.

그렇다 보니 하루하루가 참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언제 어디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른다. 어제는 평화롭기 그지없다가 오늘은 또 그야말로 전쟁 같기도 하고. 하루 안에서도 조금 전까지는 치열하다가 금방 또 평안이 찾아오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난 회사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에 평일에,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는 오롯이 아내가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다.
전우와 함께 꽃길을 넘고 넘어

내가 퇴근할 무렵에는 대체로 치열했던 상황과 감정이 정리되고, 차분히 하루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국면일 때가 많다. 퇴근이 늦은 편이 아닌데도 애들이 워낙 일찍 자는 편이라, 퇴근해서 애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1시간~2시간 정도밖에 안 되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나의 퇴근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요즘은 막내가 아주 격렬하게 환영해 주지만, 사실 첫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퇴근을 누구보다 기뻐하는 건 아내다. 땔감 구하러 나간 전우가 돌아온 심정이랄까.

얼마 전까지 막내가 젖을 먹었기 때문에 애들 재우는 것도 아내의 몫이다. 불면증 치료에 효과가 좋다는 ‘애들 재우는 방’에서 겨우 탈출한 아내는 언제나 물에 젖은 수건처럼 축 늘어져서 잠시 회복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고 나면 쉴 수 있느냐. 아직 멀었다. 애들 재울 때 희미하게 들리는, 듣고 싶지 않은 세탁기 알림 소리가 떠오른다. 젖은 빨래를 꺼내 건조기에 넣으면 안 되는 건 따로 빼내서 분류한다. 건조기에 넣을 빨래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건조기 안에 있는 건조가 완료된 빨래가 떠오른다. 건조기 안의 빨래 더미를 꺼내 소파에 던져 놓고 다시 젖은 빨래를 채워 넣는다. 분명히 빨래를 넣었는데 소파에는 다시 빨래가 한 무더기다. 통장의 잔고가 이렇게만 늘어나면 좋으련만. 게다가 만만하게 봤던 빨래는 생각보다 전투력이 세다. 자잘한 아이들 속옷부터 이불 같은 남편의 옷에, 가득 채워져 있으면 하루가 든든한 수건까지.

드디어 빨래를 다 개고 기지개를 켜며 굽었던 허리를 펴 본다. 소소하게 당 충전이나 카페인 보충을 좀 하려고 주방에 가면 잊고 있던 설거지가 눈에 밟힌다. 아직 식기 세척기는 없다. 미룰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미루면 결국 내일 폭탄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떠올리며 고무장갑을 끼고 싱크대 앞에 선다.

설거지까지 마치고 이제 드디어 쉴 시간이다. 자정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았지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낮에 이 시간을 상상하며 사 놨던 빵을 꺼내 한 조각을 잘라 먹는다. 그렇게 고소하고 달콤할 수가 없다. 밀렸던 카톡에 답장도 하고 인스타그램도 훑어보고. 두 번째 조각을 잘라 먹으려고 하는 찰나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막내가 깼다.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버텨 보지만 울음은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내는 알고 있다. 이제 저 암흑의 방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한다는 걸. 그래서 버텨 보지만 방법이 없다. 아내는 다시 문을 열고 어둠의 세계로 들어간다. 아내의 하루다. 그래도 요즘에는 조금 나아졌다. 막내가 조금 크면서 모든 게 조금 수월해졌다.

같이 해도 이렇게 힘든 걸 아내는 도대체 어떻게 혼자, 그것도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해내는 걸까?

그럼 도대체 남편인 나는 뭘 하느냐. 평일에는 퇴근하면 애들이랑 놀기도 하고, 집안일을 하기도 하고, 애들 씻기고 재우기 전까지의 준비를 맡아서 하기도 한다. 아내가 애들 재우러 들어간 사이에 설거지라도 좀 해 놓기도 하고. 평일에는 어쩔 수 없다. 물리적인 시간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대신 주말을 불태운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가 완전히 자유를 얻는 건 아니다. 여전히 아내는 모든 일상을 ‘같이’ 할 때가 많다. 다만 평일에는 없는 남편도 ‘같이’하니까 몸과 마음의 여유가 달라진다.

아내의 삶을 존경하고 인정하기
남편인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이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보다 훨씬 신경을 쓰는 일. 바로 아내의 마음을 살피고 아내의 삶을 존경하며 인정하는 일이다.
집에서 홀로 아이를 기르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밖에 나가서 열심히 일 해 돈을 버는 것 이상의 가치 있는 일이라고.
커리어를 쌓고 성취를 이루는 이들의 삶과 비교해 절대 뒤떨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돈과 시간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랑을 먹이는 위대한 일이라고.
무엇보다 그대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추억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고.
남들이 보면 신기한 게 많은 집이기도 하다. 출산율이 한 명 이하로 떨어진 시대에 애를 셋이나 낳고,
거기다 누구나 보내는 어린이집을 굳이 보내지도 않고.

아내가 온전히 자기 하루를 내어 주는 대신, 아내도 아이들의 모든 일상을 선물로 받는다. 덕분에 우리는 아이들의 꽃 같은 순간들을 ‘가장 먼저’, ‘빠지지 않고’ 볼 수 있는 특권을 얻는다. 비명과 굉음이 난무하는 전쟁통 같았지만 군데군데 핀 찬란한 꽃을 보며 하루의 고단함을 싹 잊는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직전 소파에 앉아 아내가 찍어 놓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그 맛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여보. 고생했어”

“그래. 여보도. 내일도 파이팅!”

그렇게 우리는 내일도 꽃피는 전투의 현장으로 달려간다.
본고는 집필자의 개인의견이며,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힘
글·강지훈
딸, 아들 그리고 딸 이렇게 삼남매를 홈스쿨로 양육하는 아빠 육아인, B매거진과 블로그에 ‘어깨의 육아일기’를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