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아이사랑)

[웹진 아이사랑 제60호] 전문가에게 물어요

집도 마음도 신박한 정리를 원하는 어머니들께

Q.나도 신박한 정리를
하고 싶어요.

7세 여아 미진맘입니다. 미진이 출산 후 직장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아이와 저는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19와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 육아휴직을 결정, 전업맘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진이가 늘 원하던 게 어린이집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거여서 준비를 하다 보니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화장실 물때, 뒤죽박죽 옷장, 살림 동선도 안 맞고 한숨만 나오는 주방이 부끄럽더라구요. 그래서 청소를 시작하다보니 청소도구를 종류별로 사게 되고, 하다하다 안 돼 정리도우미 서비스를 받아 옷장 정리를 하고, 낡고 유행 지난 그릇을 다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진이 친구로부터 초대를 받게 되었어요. 아이가 셋이나 되는 집에 수납이 어찌나 깔끔하게 되어 있던지 다녀와서는 우리 집이 더 지저분해보이는 거예요. 미니멀라이프가 유행한다 길래 저도 손이 안가는 살림은 싹 갖다 버렸죠. 그런데 홀가분하기는커녕 정리와 청결에 집착하며 남편과 잦은 싸움이 나고, 어지럽히는 미진이한테 신경질을 부립니다. 직장을 다닐 때보다 지금이 더 피곤합니다.

선생님, 누가 제 집도 마음도 신박하게 정리해주었으면 좋겠어요.

A. 어머니, 할 만큼 하셨습니다!

미진이 어머니의 글을 읽으니, 꼭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미진이 어머니가 했던 과정을 저도 똑같이 해보았고, 저도 똑같이 힘들어했었거든요. 우리 언니는 집을 늘 모델하우스처럼 꾸며 놓고 손님 초대하기를 즐겼는데, 우리 집에만 오면 우스갯소리로 ‘너희 내일 이사 가니?’라며 놀리곤 했었어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었던 시절, 옆집 사는 지금 제 나이 또래의 아주머니께서 저를 아주 예뻐하셨어요. 아이들과 열심히 놀고 공부시키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요. 당신은 양은 냄비가 늘 반짝거리게 하여, 살림 잘하기로 온 동네에 칭찬이 자자했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거예요. 그분 자녀들이 커서 하는 말이, 깔끔한 엄마의 요구에 맞추느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네요. 그분은 자녀들이 엄마 때문에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고 했어요. 엄마로 인해 자녀들이 감정을 억압하여 정신건강과 성취도에 지장을 받았다는 거예요.

또 기억이 나네요. 그 비슷한 무렵 이사 가기 위해 살던 집을 부동산 소개소에 내놓았는데요. 어떤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함께 우리 집을 보러 온 거예요. 여기저기 둘러보고 부엌으로 가셨는데, 며느리를 불러 속닥거리며, 가스레인지 옆 타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거예요. 기름때가 껴서 더럽다는 거지요. 저녁에 남편이 와서 집 보러 온 사람이 있느냐고 묻기에 그 얘기를 했더니, 남편은 그 시어머니에게 ‘그래서 애들을 그렇게 잘 길렀어요?’라고 따지지 그랬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이 지금까지 많은 위로가 됩니다.

사람마다 성격과 특성이 다름을 인정!

미진이 어머니처럼 정리 도우미 서비스도 받고, 그릇도 새것으로 바꾸고, 손 안가는 살림도 갖다 버리고 했으면 나름 할 만큼 하신 거예요. 사람마다 성격과 특성이 다르잖아요? 우리가 많이 아는 MBTI 성격 유형의 생활양식 지표만 보더라도 P(인식형)는 정리정돈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정보 수집을 중요하게 여겨 융통성과 유연성, 창의성, 순발력이 많지요. 그리고 J(판단형)는 준비성이 많고 계획적이고 정리정돈을 잘하고 조직적인 특성이 있고요. 그래서 한가지 현상만 가지고 사람을 비교하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또 미진이 어머니는 직장생활로 가계에 보탬이 되었으니까 처음부터 전업주부였던 사람에 비해 살림살이가 서툴러도 흠이 될 것 같진 않아요.

미진이 어머니께서는 직장생활하는 동안 아이와 종일 함께 할 수 없어서 힘드셨잖아요?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해 줄 수 없어서요. 직장생활을 하던 고급 두뇌가 육아 휴직을 한 이유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였겠지요. 살림을 잘하기 위해서였다면 휴직을 하지 않고 도우미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수 있어요.

혹시 이런 전업주부의 모습을 기대하셨나요?
청결, 위생, 정리정돈 등 완벽한 살림 마스터! 자녀 교육의 길잡이!

아이를 잘 돌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이의 학교 준비물을 빠짐없이 챙겨주고, 숙제시키고, 등교 시간 늦지 않게 챙겨주는 것을 의미할까요? 이런 경우 엄마의 채근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을 수도 있어요. 또 엄마가 아이와 싸울 기회가 많아지고요. 아이를 잘 돌본다는 것은 아이가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이가 자존감이 높고, 호기심과 흥미와 책임감이 있도록요. 이런 역할은 엄마 외에는 할 수 없을 거예요.

또 미진이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 친구들이 기분 좋아야 미진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을 텐데요. 조심할 게 많으면 긴장되어 좋은 기분은 아니겠죠. 집안이 신박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미진이 어머니가 친절하게 대해주어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야 미진이의 친구 관계에 도움 될 것 같아요.

내 속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개구리들!

아이가 숨 쉬고 성장하는 세상은 엄마의 마음 밭!

이 소중한 정원에 고운 꽃만 남겨놓고 잡초를 뽑아 정리하는 거예요. 미진이 어머니 말씀대로 신박한 정리는 마음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이는 집을 정리하는 것은 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집을 정리하는 것보다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더 훌륭한 것 아닐까요? 이런 말씀이 생각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 32)

글 · 박광석(서울상담교육연구소 소장)

국내 대학 및 한국산업카운슬러아카데미 등에서 상담 교수로 재직하며 1:1 맞춤상담 및 소그룹과 집합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역서 ‘불행한 십대를 도우려면’ (원저:Unhappy Teenagers by Dr. William Glasser)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