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아이사랑)

[웹진 아이사랑 제60호] 육아 즐거워요

한낮, 키즈 카페에서 땀 몇 바가지를 흘리며 놀고도, 좋아하는 공룡 그림책을 수십 번 읽어줘도, 눈꺼풀에 졸림이 주렁주렁 달려 하품을 쩌억 하면서도
‘안 자, 더 놀 거야!’, ‘더 읽어줘!’, ‘콩순이 더 볼래!’... 그 놈의 ‘더’ 소리에 ‘그만!’ 이라는 말로 응수할 수 있는 나는
육아 5년차 워킹맘이다.

육아 5년차,
올해 내가 잘한 일 첫 번째, “갑” 모시기!

육아 세계에도 갑을이 존재한다. 정보가 많은 엄마가 갑이다. 워킹맘인 나는 어느 키즈 카페가 물이 좋은지, 동네 어느 병원이 주사를 덜 아프게 놓는지,
가성비 좋은 놀잇감이 뭔지... 갑을 통해 알게 된다. 알짜 정보를 공짜로 획득할 수는 없으니 커피 쿠폰이라도 보내며 give&take를 확실히 하지만 어쩐지 을의
맘 한구석에는 항상 빚진 자의 채무감이 남는다. 왜냐하면 갑과 달리 을의 생활은 이자 납입금처럼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주말 근무가 잡혀 출근을 하게 된 적이 있다. 당장 돌봄 선생님을 모실 수도 없어 난감하던 차 비슷한 형편의 엄마들에게 도움을 청해보지만 그들은 우리 아이까지 감당할 수 없는 ‘을’ 일뿐이었다. 이때 필요한 사람은, 그들의 주말에 우리 아이가 껴들어가도 흐트러짐 없을 가정, 바로 갑이다. 갑의 주말은 평일과 다름없이 안정적이고 평온해 보였다. 불청객에도 관대해 우리 부부의 식사 안부부터 물었다. 반나절이 넘도록 사무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내게 아이가 피자를 만들며 즐거워하는 동영상을 찍어 보내주는 여유까지 있었다. 이러니 육아 맘 세계에 존재하는 계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사 두 번에 어린이집 전학도 두 번! 아이와 나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이별하고 다시 관계를 맺으면서 ‘갑’을 인정하고 모셔 드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을’ 끼리 모였을 때 하소연처럼 ‘갑’의 뒷담화를 하던 여중생 버릇도 고쳤다. 갑의 능력을 질투하고 가치를 폄하한다고 해서 육아 우등생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갑의 SNS에 ‘좋아요!’를 누르고 인맥을 돈독히 쌓는 편이 세상 속 편한 일이다.

육아 5년차,
올해 내가 잘한 일 두 번째, “야식을 허한다!”

오해하지 말 것은 필자도 출산 후 다이어트가 생활이다. 그런 내가 야식을 합법화한데는 사연이 있다. 육아와 업무를 핑계로 식사 시간이 불규칙한 편이고 그나마도
급한 용무가 있을 때는 씹기 보다는 삼키는 음식을 선호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몸이 무겁고 하늘이 빙빙 돌았다.

폭식만큼이나 건강을 해치는 것이 공복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내 생활과 체질에는 간헐적 단식 등 공복 시간이 길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보상 심리로 허락했던 맥주 한 캔, 치킨 몇 조각 대신 제대로 밥을 먹기로 했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났을 때 얼굴이 붓거나 더부룩할 줄 알았는데 체중도 더 늘지 않았고 오히려 아침에 에너지가 생겼다. 치맥으로 늦은 저녁을 먹을 때는 소화를 시키기도 전에 잠이 들어 모든 게 악순환이었다. 그러나 한 끼 식사를 하기로 결정하고부터는 유산소 운동이나 족욕 등으로 피로감을 해소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잠들기 전 30여분의 변화만 허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무겁고 피곤한 몸으로 잠들어 피로의 악순환을 사는 것보다 자신에게 맞는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실천하길 참 잘한 것 같다.

육아 5년차,
올해 내가 잘한 일 세 번째, “독립”

아이가 독립을 했다. 잠자리를 분리시킨 것이다. 물론 새벽에 엄마를 부르는 날이 많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방에서 혼자 놀기도 하고 잠은 꼭 자기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엄밀히 얘기하면 아이를 독립 시켰다기보다 부부의 사적 공간을 리모델링했다는 말이 정확하다. 가구를 재배치할 필요도 없다. 아이만 아이의 공간으로 옮겨주면 된다. 이 쉽고 간단한 결정으로 우리는 부부 갈등 상담 직전에서 타협할 수 있었다. 아이가 사라진 공간에서 몇 주간 우리는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아이의 눈치를 보느라 꾹꾹 쌓아놓았던 감정들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어느 날, 묵직한 다리 한 짝이 내 다리 위로 얹어졌다. 자장가를 부르며 아이의 등을 쓸어내리는 대신 구부정한 남편의 등짝을 짝짝 후갈기며 허리 펴! 허리 펴! 잔소리도 나왔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 없어진 공간에서 나는 아내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렇다고 드라마틱하게 금슬이 좋아졌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부모의 역할과 부부의 역할을 나누게 된 계기가 마련된 것은 확실하다.

2020년 올해 후회되는 일!

  • 해외여행 코로나19로 취소하고 다시 예약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일
  • 빈속으로 야근한 일
  • 남한테 부탁 못해서 혼자 동동거리다가 아이 앞에서 울어 버린 일
올해 잘한 일 세 가지보다 후회되는 일이 더 많다. 그러나 지나간 일은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위해 돌아볼 뿐 마음에 붙들고 있진 말아야 한다.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육아맘도 성장하려면 앞으로 전진해야하기 때문이다. 출산을 몇 주 앞두고 있는 후배가 올해 육아가 즐거웠냐고 묻는다. 어떤 것도 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니 어서 육아의 세계로 들어오길 바란다고 전해야겠다.
글·차선아(찡찡이맘)
육아휴직 없이 일하는 엄마로 육아 5년차입니다. 개인 블로그를 통해 워킹맘의 세계를 진솔한 에세이로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