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아이사랑)

[웹진 아이사랑 제57호] 육아 즐거워요

육아 즐거워요 여보, 우리는 안전해!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망설이는 이유

저는 갓 육아휴직을 시작한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출근하지 않은 지도 벌써 3주가 지났는데요. 저의 휴직과 동시에 아내가 복직을 했기 때문에, 집안일은 이제 대부분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청소, 빨래, 요리, 그리고 첫째 아이 어린이집 등하원까지. 직장을 다니는 것만큼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조금 덜하긴 하지만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주부’의 역할을 하는 것이, 저에겐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닙니다. 육아휴직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17년 9월, 당시 복직을 해야 했던 아내와 아직 어린이집에 발을 들이지 못했던 딸을 위해 첫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었던 첫 번째 육아휴직

육아와 가사를 도맡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건, 그것을 뛰어넘는 행복이었습니다. 평소에 직장에서 밤을 새워 일하는 날이 많다보니 하루 종일 집에서 고생하는 아내와, 많이 놀아주지 못하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요. 그런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육아휴직은 저에겐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아내도 저의 육아휴직이 꽤 만족스러운 듯했습니다. 매일같이 죄송한 마음으로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거나, 불안해하며 다른 사람 손을 빌리는 것보다는 아빠인 제가 아이를 맡는 쪽이 안심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에도 저의 두 번째 육아휴직을 계획했습니다. 이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다는 걸 첫 번째 육아휴직을 통해 너무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육아휴직이 처음은 아니지만,
여전히 힘들었던 시작

둘째 출산 후 100일 정도 지났을 즈음, 저는 아내와 함께 육아휴직에 대한 세부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 1. 아내의 복직 시점에 맞춰 2020년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하고, 기간은 1년으로 한다.
  • 2. 육아휴직 계획을 휴직 시작 최소 6개월 전에는 회사에 알린다.
  • 3. 육아휴직이 불가하거나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경우 빨리 아내에게 알리고 함께 대안을 찾는다.
하지만 이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참 어려웠습니다.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왜 그렇게 눈치가 보이고 입이 떨어지지 않던지요.

당시는 첫 번째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지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또' 휴직을 하겠다는 얘기가 마음 편히 입 밖으로 나올 리 없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업무에 투입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휴직 얘기를 하기에 좋지 않은 시기라는 생각도 자꾸만 들었습니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사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D-6개월 선이 무너졌고, D-5개월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2019년 9월이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같이 일하게 된 선배에게 먼저 얘기를 꺼냈습니다.
아빠
선배, 사실 저 내년에 육아휴직 계획이 있어요.
선배
아, 그래? 언제?
아빠
내년 초요. 아, 그런데 팀장님께 말씀을 잘 못 드리겠네요.
선배
뭐 어때, 얘기해~ 그런 거 못쓰게 할 분 아니잖아?

맞는 말이었습니다. 2년 전, 처음 육아휴직을 결심했을 때도 흔쾌히 들어주시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라며 제 뜻을 지지해주신 팀장님이었습니다.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육아휴직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더 신경이 쓰였던 건 제가 남자 직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 일임이 분명했으니까요.

그러다 9월의 마지막 금요일이 됐습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출근길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오전 내내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이었습니다.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 뒤 자리로 돌아왔는데 그날따라 어쩐 일인지 팀장님과 저, 둘만 불이 꺼진 사무실에 있게 됐습니다. 내적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아빠
지금인가...? 좀 더 기다려 볼까...?

복잡한 마음에 일단 화장실로 가 칫솔질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기하게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며 용기가 생기더군요.

아빠
에라, 어차피 말할 건데 빨리 말해버리자!

호기롭게 입을 헹구고 자리로 돌아온 저는 그대로 팀장님에게 직진, 면담 신청을 했습니다.

아빠
팀장님, 지금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팀장
응. 그래.

팀장님은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익숙한 표정으로 대답하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회의실에 함께 들어간 뒤, 저는 조심스레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팀장님의 반응이 좀 놀라웠습니다. 제가 고민하고 망설였던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매우 긍정적이었던 겁니다.

팀장
그래. 애들이 제일 중요하지 뭐. 그럼 내년 3월부터? 얼마나?
아빠
1년이요.
팀장
그래. 아이들이랑 보내는 시간이 제일 소중한 거니까. 너는 한 번 해봤으니까 알잖아?
아빠
네. 감사합니다.

제가 그동안 괜한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금세 마음이 놓였습니다. 팀장님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팀장
그런데 뭐 그런 얘기를 이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어렵게 해?
어차피 법적으로 보장돼 있는 거잖아? 육아휴직은 네 권리야.

면담은 그렇게, 5분 정도로 짧게 마무리됐습니다. 회의실을 나오니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홀가분했습니다.
아내에게 곧장 연락을 했습니다. 이 소식을 그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나는 왜 진작 얘기를 꺼내지 못했던 걸까.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육아휴직 최대 걸림돌은 결국 ‘나’였던 게 아니었을까

저는 정말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걸까요? 그동안 제가 어렵게 생각했던 이들은 정작 제가 육아휴직 얘기를 꺼냈을 때 흔쾌히 들어주었고, 또 격려하며 응원해주었습니다.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았지만 저는 스스로를 검열하며 육아휴직을 망설이고 있었던 겁니다.

남자도 마음껏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사용할 수 있는 사회. 모두들 그런 사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데, 정작 저는 그렇지 못했나 봅니다. 오히려 보수적이었던 건 그들이 아닌, 저였던 것 같았습니다.

'직장 상사들은 보수적이야. 눈치 보여서 육아휴직 얘기하기가 힘들어.'라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자신감’이나 ‘용기’가 없어서라기보다, '나는 진심으로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너무 아까운 권리, 육아휴직

‘육아휴직 얘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다, 아마 안 될 것이다, 얘기했다간 본전도 못 건질 것이다’ 하면서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직장 상사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섣불리 포기하지 말고 먼저 말이라도 꺼내봐야 합니다.

어렵게 얘기를 꺼냈는데, 거절당하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될 일입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회사를 향해 “내가 이 회사의 직원이지만 가정에선 아빠이기도 하다.”라는 목소리를 먼저 냄으로써, 육아휴직에 관한 공을 회사에 넘겨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만 육아휴직이 아빠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육아휴직은 사용하지 않고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권리입니다. 월급쟁이에게 이렇게 긴 시간,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언제 또 주어질까요. 퇴사를 하지 않는 한, 없습니다. 가정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육아휴직. 꼭 사수하시길 바랍니다.

글·허원준(으뜸어린이집 은이 아빠)

현재 SBSCNBC 제작PD로 다수의 방송을 연출하였으며 SNS를 통해 육아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