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아이사랑)

[웹진 아이사랑 제63호] 부부탐구중

부부탐구중
부부탐구중
 
  • 포스터

    [출처] 레볼루셔너리로드 포스터
    (네이버 영화 제공)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열연한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아내와 남편은 첫눈에 사랑에 빠집니다. 아내는 남편의 꿈과 당당한 태도에 매료되었고 연극배우였던 아내의 매력적인 모습에 남편은 푹 빠졌습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남녀는 결혼에 골인했고 카메라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두 사람의 일상을 클로즈업합니다.

    남편은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리라 결심했는데 우연히도 아버지와 같은 회사의 샐러리맨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고 지역 소극장에서 활동하는 아내의 연기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아내의 공연이 있던 날 남편과 아내는 크게 다투는데요, 부부싸움의 전형을 보여주게 됩니다.

    주인공인 여배우의 연기가 별로였다고 수군거리는 관객들을 뒤로 하고 카메라는 여주인공인 아내의 절망스럽고 지친 얼굴을 비춥니다. 스스로의 연기와 관객들의 반응에 크게 좌절한 아내는 동료들과의 뒤풀이도 거절하고 집에 가서 쉬고 싶어 합니다. 남편은 다소 못마땅한 표정이지만 아내의 뜻에 따라 귀가하는데요. 차안에서 남편은 애써 위로를 건네지만, 아내는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죠.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대화를 나누다 급기야 아내는 갑자기 차에서 내리고 따라 내린 남편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맨주먹으로 차량을 내려칩니다.

 

원래 부부관계가 그런 거 아니에요?

부부를 함께 만나다보면 영화와 같은 장면이 많이 연출됩니다. 아내와 남편 모두 서로 격한 감정을 주고받다가 싸우고 또 휴전했다가 격렬하게 싸우는 것을 반복하죠. 둘 다 지치게 되면 결국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휴전 상태에 머물게 되는데 혹자는 ‘원래 부부관계가 그런 거 아니에요?’ 라고 냉소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서로 싸우지 않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라며 서로 거리를 두게 되는 건데요,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거리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지 못하게 되면 다른 문제가 불거질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배우자중 한쪽이 부부관계에서 받지 못하는 위안을 자녀에게 받으려고 한다든지 (이 경우는 아이에게 또 다른 애착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혹은 누군가의 일시적인 위로가 필요해서 외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도는 심각한 애착 손상을 초래하게 되는데요,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게 됩니다.

부부 상담을 하다보면 종종 상대의 어떤 모습이 너무 싫다, 지긋지긋하고 숨 막히게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남편은 배우답게 화려하고, 꿈을 좇는 소녀 같은 아내의 모습에 처음에는 매력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생활에서는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 가자고 말하는 아내의 제안이 버겁고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아내 역시 결혼 전에는 주도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남편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나 결혼 후는 그런 모습이 자신을 억압하고 구속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피터 포나기(Peter Fonagy) 는 우리는 모두 어렸을 때의 관계를 재연하기 쉬운 상대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자물쇠와 열쇠처럼 우리는 내 안의 결핍을 채워줄 누군가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지만 그 강렬한 사랑이 식을 때쯤에는 처음의 매력요소가 어느 순간 나를 구속하는 억압으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열정파 A와 신중파 B가 만났을 때

※ 본 사례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일부 각색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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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아버지가 지방에서 일을 하느라 집을 자주 비웠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 A씨 형제들을 돌보느라 늘 지쳐있었습니다. A씨는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위해 착한 아들이 되려고 굉장히 애를 썼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 어머니가 인정해주면 A씨는 굉장히 기뻤다고 기억했습니다. 지치고 우울해했던 어머니가 자신의 좋은 성적을 볼 때만은 웃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형편에 힘들게 일해서 자신들을 키운다는 것을 알고 있던 A씨는 반찬투정도 한번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A씨는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도전하고 주도적이면서 시원시원한 성격 탓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A씨는 자신과 다르게 조용하고 신중해 보이는 K씨와 결혼하게 됩니다. 열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집안일까지도 꼼꼼하게 챙기는 A씨와 역시 맞벌이를 하면서 신중한 성격의 K씨는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둘은 심심찮게 싸우게 됩니다. A씨는 힘든 아내를 위해서 퇴근 이후 같이 아이를 돌보고 아이의 이유식도 직접 만들면서 육아에 굉장히 힘을 쏟습니다. 마치 어릴 때 어머니를 도와주고 칭찬받고 싶어 하던 소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갓 돌을 지난 아이는 A씨의 정성을 알아주기는커녕 이유식을 잘 먹지 않고 자주 투정을 부립니다. 그 연령 발달 상 당연한 반응이지요. 그런 모습조차도 A씨는 자꾸만 화가 납니다. 그런데 아내도 내 수고를 알아주고 인정을 해주기는커녕 아이를 힘들게 한다며 오히려 아이편만 들고 타박을 합니다. A씨는 점차 아내와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늘어났고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를 윽박지르고, 아이 편을 드는 아내에게도 불같이 화를 냅니다. 아내는 결혼 전에는 주도적이고 열정적이어서 멋있던 남편이 이제는 가정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마음대로 하려는 태도가 너무 버겁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하는지 자신도 잘 모르겠는데, 남편은 뜻대로 아이가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를 냅니다. 두 사람은 이제는 서로 집안일을 핑계 삼아 격렬하게 싸우게 되고 주위에서는 청소를 도와주는 도우미를 쓰거나 로봇 청소기를 들여 보라는 둥의 조언들이 이어졌지만 두 사람의 감정 골은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둘이서 점차 싸움이 잦아지다가 종국에는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립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maw2_1

우리는 흔히 부부가 격렬하게 싸울 때 눈에 보이는 그 문제의 수준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를 테면 집안일로 싸우니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을 의논한다던지, 아이 양육이 힘들다면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보는 등의 해결책입니다. 아, 물론 그런 방법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회사나 조직에서는 그런 방법이 꽤나 잘 통합니다. 서로 계약관계로 맺어진 사회에서는 서로 간의 약속을 정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그렇지만 부부관계에서는 그런 방법이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라는 점을 꼭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A씨와 K씨 부부 모두 표면적으로는 상대에게 화를 내고 분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감정을 정서중심부부치료*라는 치료모델에서는 표면적인 감정이라고 부릅니다. 강하고 거칠어서 다가가기 힘든 표면적인 감정을 잘 열어서 살펴보면 그 깊숙한 내면에는 원래의 취약한 감정이 숨어 있다고 하는데요. 보통 이 취약한 감정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잘 꺼내지 못합니다. 너무나 약해서 누군가에게 공개했다 거절당하면 더 큰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보호법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 정서중심부부치료란?

부부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개인 내적 그리고 부부 상호 간의 정서적 패턴을 변화시켜 친밀하고 안정된 정서적 결합을 유도하고자 하는 접근법 (Emotionally Focused Couple Therapy) - [출처] 상담학 사전(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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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아내와 어린 아이에게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직장생활과 가정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칭찬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A씨는 슬프고 외로워졌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힘들까봐 반찬투정 한번 해 본적이 없고, 어머니가 늘 나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해주시기를 너무나 바랬지만 바쁜 어머니는 그러지 못하셨습니다. A씨의 아이를 위한 이유식 만들기는 그러한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받지 못했던 충분한 사랑을 아이에게 주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아이는 고마워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한두 살 정도의 아이가 부모에게 감사를 표현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의 상처와 결핍이 현재와 연결된 순간 우리는 모두 어른에서 다시 소년, 소녀로 돌아갑니다. A씨도 그렇습니다.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 ‘아기들이란 원래 투정이 많은 법이지’라고 생각할 마음의 여유를 잃게 됩니다. K씨 역시 마찬가집니다. A씨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자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늘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멋있어보였던 남편이었지만 자신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어떻게 해얄지 불안하고 힘듭니다. 내가 사랑하고 의지하던 남편의 모습이 사라진 것 같고 남편을 잃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을 감추려고 같이 화를 내고 자리를 피합니다.

이렇듯 부부의 표면적인 싸움을 잘 들여다보면 내면의 상처와 슬픔, 외로움, 두려움 등의 약하고 여린 감정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감정을 부부가 같이 공유하고 서로 위안을 나누게 되면 부부관계가 어느 때보다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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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면과 부부 사이에 숨어있는
을 발견해주세요!

내가 배우자에게 혹은 자녀에게 화가 나는 순간, 잠시 멈추고 내 내면을 잠시 들여다보세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 아래로 어떤 마음들이 지나가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는지 목이 메는지, 두통이 생기는지 몸의 변화를 살피는 것도 굉장히 유용합니다. 의식적으로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더라도 때때로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의 반응을 잘 살피게 되면 내 내면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내 감정을 살펴서 들여다보았다면, 다음으로는 상대의 감정에 우선 머물러 보세요. 누군가 화를 내면 본능적으로 내 안에서 분노가 생깁니다. 화내는 사람에게 같이 화를 내거나 모른척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그 대신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보일 때 그 순간에 잠시만 집중해보세요. 상대의 말을 아무런 비난 없이 눈을 맞추고 5분 정도만 들어주세요. 그러면 같이 화를 내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상대의 화가 가라앉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부부사이는 비즈니스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너무나 사랑해서 연결된 사이라는 것을 언제든 잊지 마세요. 숨겨진 내면의 감정을 서로에게 드러낼 때 비로소 더 강하게 연결이 됩니다.

본고는 집필자의 개인의견이며,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힘

글·김민경 진료원장(다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부부관계의 회복을 돕는 ‘EFT정서 중심적 부부치료’ 전문가 과정을 밟아 부부, 가족 간의 갈등과 외도 등의 문제를 돕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마음이 답답할 때 꺼내보는 책> <현대인의 심리유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