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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아이사랑 제63호] 전문가에게 물어요

내 집으로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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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할머니
Q.

아들, 며느리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2주 어린이집 방학 기간 동안만 친손자 상준(6세)이를 돌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돌봄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자가격리 같은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3개월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아들네 형편이 참 딱합니다. 맞벌이로 아들, 며느리는 퇴근시간이 늦어 어린 손자도 해진 저녁에나 옵니다. 제가 있으면 어린이집에 그렇게까지 오래 있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남편과 사별 후 서울에서 독립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지방에 사는 아들네와는 3시간 거리라 주말에 잠깐이라도 쉬다 올 수도 없습니다. 며칠 전부터는 잠을 잘 못자고 하루 종일 피곤합니다. 식욕도 없구요. 지인들 황혼 육아로 자녀들과 갈등하는 얘기 들을 때마다 대화로 못 풀고 어쩌다 저 지경까지 됐을까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 문제가 되고 보니 아들, 며느리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네요. 그런데 아이들과 불편해질 것이 두렵습니다.

A.

황혼 육아, 생명을 발현시키는 사랑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손주 사랑이 많으시네요. 2주 봐준다고 가셔서 3개월 넘게 손자를 돌봐주고, 늦은 저녁까지 어린이집에 있을 손자를 안타까워하는 걸 보면요. 게다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신 걸 보면 아들 며느리에 대한 배려심도 있고, 갈등을 대화로 풀려는 지혜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실에서 황혼 육아로 인한 갈등이 생기면 누구라도 고민이 될 것 같습니다. 며칠 전부터 뒤척이며 잠을 못 자고 식욕도 없고 종일 피곤할 정도면 어머니께서 마음고생 몸 고생이 많이 되었다는 뜻이겠지요? 자식의 아이는 자식이 기르는 것이 원칙일 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 부부들은 요즘 방식으로 알아서 잘하고 있습니다. 탄력 근무제 시간을 활용하고, 어린이집을 활용하고,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해서, 또한 성공적인 육아를 위해 부모 교육을 받고, 맘카페를 통해 정보를 주고 받으며 어렵지만 지혜롭게 잘 대처해 나가고 있지요. 부모로부터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젊은 부부들도 많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나 이런 고생도 젊은 부부들을 성장시킬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는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 대신, 자녀를 믿으시고 이제는 내 집에 가겠다고 가볍게 말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아들 내외가 오해하거나 서운해할까 염려되시면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손주 보는 3개월이 행복했다”고, “그러나 서울에 가서 내 생활도 해야겠다”고, “고생하며 열심히 사는 너희들이 대견하다”고 말을 해도 좋겠지요?

모두가 알아야 할 황혼 육아의 무게
황혼 육아가 어려운것은 사실입니다.

첫째, 신체적인 한계

신체적인 한계로 같은 활동을 해도 젊은이들보다 더 힘들 뿐만 아니라 회복이 더디다는 것을 젊은 부부는 생각은 할 수 있겠지만 느껴지기는어렵겠지요.

둘째, 표현의 한계

신체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힘들어 하면 아들 내외가 미안해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유세를 부린다고 여길까봐 염려되어서요.

셋째, 쉼의 한계

함께 거주하면 육아 출퇴근 시간이 없어서 육아가 쉼 없이 지속된다는 것을 이해받기 어렵겠지요. 왜냐하면 젊은 부부는 직장에서는 일하고 자녀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은 쉬는 시간으로 여기기 때문이지요.

넷째, 마음의 한계

처음에는 고마워하다가 나중에는 당연하게 여겨 어머니가 서운할 수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함께 지내다 보면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난처한 일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 지구를 떠나고 싶은 할머니

    황혼 육아를 하는 어떤 분은 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다 ’할머니는 지구를 떠나고 싶다.’라고 말했다네요. 아마도 아들에게 ‘육아를 떠나고 싶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전달된 것이겠지요? 그랬더니 손녀는 ‘할머니 지구를 떠나면 어디로 가?’라고 해서 ‘아마도 우주로 가겠지?’라고 했더니 손녀는 ‘우주는 위험한데...’라고 해서 웃었다고 합니다.

  • 상처 주지 않고 내 마음 말하기

    그래서 황혼 육아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을 대화로 풀기 위해서 의사소통 능력이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자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내 마음을 말하는 나-전달을 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나-전달은 내 마음과 감정을 전달하는 의사소통 기술이기 때문에, 나-전달을 하려면 우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불편해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겠지요? 정말 서울에 있는 내 집으로 가고 싶은지, 아니면 잠깐 쉬다 올 수 있는 곳이 필요한지를요. 서울에 가고 싶다면 어떤 어려움 때문인지를 찾아야겠지요?

    아이들이 5,6세 때까지는 무조건적인 긍정적인 사랑을 받아 매일매일 행복해야 긍정적인 자아정체성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감을 갖고 세상을 탐험하며, 각 단계에 필요한 발달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낼 수 있습니다. 이런 보살핌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할머니가 제격일 것입니다.

  • 할머니의 헌신, 생명을 발현시키는 사랑의 힘

    황혼 육아는 젊은 엄마였던 시절에 미성숙해서 아들에게 충분히 베풀지 못한 사랑을 손주에게 대신 베풀어, 사랑하는 삶을 재경험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시간 즉 내 생명의 일부를 손주에게 주므로써 육신은 죽어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위대한 여정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서울 집으로 가지 못하고 헌신하는 이유가 아마도 한 생명을 발현시키는 사랑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본고는 집필자의 개인의견이며,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힘

글 · 박광석(서울상담교육연구소 소장)

국내 대학 및 한국산업카운슬러아카데미 등에서 상담 교수로 재직하며 1:1 맞춤상담 및 소그룹과 집합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역서 ‘불행한 십대를 도우려면’ (원저:Unhappy Teenagers by Dr. William Glasser)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