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아이사랑)

[웹진 아이사랑 제59호] 육아 즐거워요

“이상하다, 이때쯤이면 아파트 바닥분수 운영을 하던데….”

지오가 뒤집고, 배밀이하고, 앉고, 기고, 드디어 걷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이번 여름엔 바닥분수 물살의 짜릿함을 맛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때찌 때찌!
못된 코로나19’는 한여름의 평범한 즐거움마저 빼앗아갔다. 엘리베이터 앞 벽보 단지 소식란에는 피트니스며 탁구장 같은 운동 시설과 노인정, 독서실 등의 공동이용시설을 폐쇄한다는 안내가 큰 글씨로 무섭게 적혀있다. 바닥분수 이용도 불가능하다는 문구는 마치 ‘앞으론 집에만 있으세요!’ 라는 경고로 들린다.

아는지 모르는지 지오가 ‘옹, 옹~’ 옹알이를 하며 소식란을 가리키자 옆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에고, 그래 애들이 무슨 죄니….” 하신다. 덩달아 나도 ‘그래, 애들이 뭔 죄야? 근데 난 또 뭔 죄여!’ 하는 불평과 불만이 급 폭발한다.

애들이 뭔 죄, 육아는 또 뭔 죄!

“어쩌지, 이번에 우리 단지 바닥분수 가동 안한대. 좌절이야!”

마침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를 붙들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듣던 친구가 말을 끊으며 볼멘소리로 핀잔을 준다.

“야! 바닥분수 하나 안 하는 거로 뭐 좌절까지 하고 그러냐?”

사실 육아휴직 전의 나라면 똑같이 반응했겠지. 아니! 그저 집에만 있는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의 넋두리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바닥분수는 단순히 바닥에서 물이 나오는 시설이 아니라 나와 지오에겐 이 한여름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빅재미의 한 테마다. 이걸 못하게 되었으니 좌절이란 말이 나올 만했다. 실전 육아에 들어서고 보니 아이와 관련된 사소한 것 예를 들면 바닥분수, 장난감, 특정 브랜드의 우유와 생수, 하다못해 칫솔, 치약, 로션 등은 결코 사소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디테일한 것 중엔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아이템이 존재한다.

놀러 가서 두고 온 아이의 장난감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그 장난감은 아이의 전부일 수 있기에 여행지에 놓고 온 장난감을 찾는 커뮤니티 글은 마치 미아를 찾는 심정으로 올린 글이다. 아이의 숟가락, 인형, 생수, 신발, 모자, 옷 등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아이를 안심시키고, 웃기고, 먹이고, 재우는 데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때문에 육아 맘과 육아 아빠의 가방은 늘 차고도 넘친다.

아이의 디테일을
알아가는 과정이 곧 육아!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현실 육아에 지쳐갈 때쯤 우리 가족에게 오아시스가 되어준 곳이 바로 지오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이다. 방역 규정과 규칙을 준수하고 아이들이 여러 테마로 안전하게 놀며 케어 받을 수 있어 안심이 되었다. 또 어린이집을 보내며 빼놓을 수 없는 찐 이득이 있는데 앱 알림장에 올라오는 사진과 담당 선생님이 올려주는 그 날의 놀이와 아이의 반응이 담긴 글이다. 사진은 내가 찍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라 좋고, 글을 통해선 지오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좋다. 또 이 글들을 모아 정리하면 괜찮은 육아 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선생님은 따옴표를 이용해 표현한 말과 그에 따른 지오의 반응을 기록해 올려주는데 예를 들어 마스크를 잘 하지 않으려는 지오를 설득한 말 “이건 꼭 쓰고 있어야 해”, “신발 정리를 해보자!”, 선생님에게 다가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옹알이할 땐 “그랬어, 그랬구나….” 식이다.

평범한 표현 같지만 이렇게 매일 올라오는 표현과 아이의 반응을 보며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표현한 말]과 [아이의 반응]으로 나눈 표를 만들어 날짜를 적고 어린이집 선생님이 올려준 내용으로 빈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의외로 일상에서 훈육할 때 도움이 되고 똑같은 표현에 다른 반응을 보이는 지오를 보며 ‘이 만큼 성장하고 있구나….’ 대견스러울 때도 있다.

  • 아이의 반응:
    말을 해도 자꾸 벗어 버림
    (반복 연습이 필요함)

  • 아이의 반응:
    자동차 줄이 흩어진 게 싫음
    자동차(장난감)를 던진 이유 알아채기
    (‘아빠 도와주세요’로 연결되도록 유도함)

  • 아이의 반응:
    ‘부비부비’라고 말하면 손을 비비며
    화장실로 향함

위기의 시대,
놓치지 말아야 할 이것!

코로나19가 발발된 지난겨울, 근무하는 병원도 발 빠르게 비상체제로 운영되면서 모두가 방역 기본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조심 또 조심했지만 결국 확진자가 나왔다. 더군다나 확진자와 아내의 동선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러면서 지오는 어린이집 등원이 어려워졌고, 나는 오아시스를 잃고 독박 육아를 선물로 받았다. 이후 음성판정을 확인받은 후 그나마 유지되던 일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확진자가 줄어들며 사람들의 경각심도 낮아져서일까? 진정되나 싶었던 코로나19는 오히려 무서운 기세로 확산 중이다. 이젠 지오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카페에서 누리던 작은 호사마저도 코로나19에게 빼앗겼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막막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답한 마음에 지오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데 이젠 떡진 머리를 감쳐줄 모자는 없어도 괜찮은데 마스크를 안 하면 허전하다. 지오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제발 아무도 없어라!’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경계의 대상이 코로나19가 아니라 사람인 것 같아 씁쓸하다. 출입구를 나와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하는데 길 가던 할머니가 갑자기 나를 부른다.

“저기 애기 아빠! 저쪽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데요. 애기 마스크 써야 할 것 같은데!”

아차! 내 마스크는 챙겼으면서 지오 마스크를 안 하다니…. 또 한 번 불량 육아를 반성하며 낯선 할머니의 관심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저 우리 세 식구만 타인과의 접촉 없이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웃을 걱정하고 챙겨주는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키워드를 하나 뽑으라면 ‘배려’ 가 아닐까.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 등 타인과의 접촉점이 있는 모든 상황에서 배려가 절실하다. 육아도 그렇다. 배우자의 배려가 없다면 독박 육아에서 헤어 나올 수 없고, 방역지침을 지키기 위한 어린이집 선생님의 배려가 없다면 아이를 등원시킬 수 없다. 비록 포스트코로나 속 위기에 살고 있지만 이를 기회 삼아 지오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주고 싶다.

바닥분수의 아쉬움뿐만 아니라 내 아이를 지켜 내야 한다는 무게가 상당하다. 하지만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겨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세상 모든 아이가 마스크를 벗고 밖으로 뛰어나와 웃고 떠들며 바닥분수의 짜릿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을 기다리고 있기 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자.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 기본부터 철저히 해야겠다. 육아도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의 수많은 육아팁에 의존하기보다 우리에게 와준 아이를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이웃을 향한 배려와 진심 어린 사랑으로 빼앗긴 바닥분수를 되찾아주면 좋겠다.

글·임형석(지오아빠)
현재 삼성서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간호사로 재직하며 B매거진에 ‘ 간호사 아빠의 육아일기’를 연재 중입니다.